2009년 10월 30일 금요일

세계여행은...


두개여행보다 많고 네개여행보다 작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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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뭐한거지? ㅋ

(지붕뚫고 하이킥이 날 배려놨군..ㅎ)

어디선가 업어온 꽤 도움되는 글들..



1. 게으름 타파를 위해서... (나의 목표 달성을 위해서..)


긍정적인 삶의 동기 일곱 가지

게으름은 움직이느냐 움직이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게으르다는 것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런 물음과 생각 없이 일상적인 생활을 바쁘게 사는 것도 삶에 대한 근본적인 게으름이다. 무릇 게으름이란 ‘움직이느냐! 움직이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중요한 일부터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게으름을 ‘여유’라는 말로 위장하지 말아야 한다. 의외로 구분은 쉽다. 게으름은 후회를 주지만 여유는 풍요로움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1. 내 삶의 쓰임을 알아야 한다.
게으름에 대한 가장 확실한 처방은 ‘하면 된다!’는 것이 아니라 ‘왜 해야 하는가!’를 발견하는 데 있다. ‘내 안의 나’를 만나야 하고 ‘내가 원하는 나’를 알아야 목표가 생기는 법이고 그에 따라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절실히 알 수 있게 된다.

2. 자기 통제력이 약하다면 자기 외적 통제력을 강화해야 한다.
하지 않으면 안 되게 강제성을 동원하라는 것이다. 학원이나 클럽을 등록하거나 내기를 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선언을 하는 방식이다.

3. 자극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좋은 경쟁 상대를 만들어라.
긍정적인 동기를 부추겨줄 수 있는 좋은 친구와 라이벌을 가까이 하고 있을수록 좋다.

4. 해낼 수 있고 짧은 기간의 계획부터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루었다면 충분히 보상하라. 우스운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예를 들면 3일 동안의 계획을 세우고 작심삼일 하라. 그리고 자축하고 나서 또 새로운 3일의 계획을 세워라.

5. 육체적으로 피로한 사람은 늘 정신적 피로감과 무기력감을 달고 다닌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맞는 이야기이다. 운동은 사람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해주는 천연의 보약이다.

6. 일의 경중과 완급을 구분하라.
중요한 것부터 우선적으로 해야 한다. 모든 일에 부지런한 사람은 없다. 부지런한 부분이 있고 게으른 부분이 있다. 명심하라! 모든 일에 부지런하려고 하는 순간 당신은 게을러지고 만다.

7. 좋은 질문이 좋은 답을 주고 구체적인 질문이 변화의 출발점이 된다.
‘난 왜 운동을 못할까?’라는 질문 대신에 ‘체중을 5kg 정도 빼려면 하루에 얼마를 운동해야 하고 몇 칼로리 정도로 식사량을 조절해야 하지?’와 같이 구체적인 질문을 해야 실천적인 답이 나온다.

<좋은 글>




2. 삶(고통)을 살아가기 위해서...


가훈이 '감사'인 세 식구

아버지는 아파트 경비를 하고 어머니는 야식배달전문 식당 주방 일을 합니다. 아들은 대학을 휴학하고 편의점에서 심야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아버지는 이틀에 한 번 이른 아침에 출근해 24시간 근무합니다. 어머니와 아들은 저녁에 출근해 다음 날 아침에 집으로 돌아옵니다. 이틀에 한 번은 셋이 비슷한 시간에 퇴근해 함께 아침식사를 합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가족에게 “감사합시다.”라는 말을 선창합니다. 그런 뒤에 셋이 함께 “감사합니다.”하고 말하고 나서 식사를 시작합니다.

아버지는 교회도 다니지 않고 절에도 다니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야 한다고 가족에게 말합니다. 어쩌면 감사가 아버지의 종교인지 모릅니다. 평생 집 한 칸 마련하지 못하고 넉넉한 형편으로 살아본 적 없지만 아버지의 마음에서 감사가 떠난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철없던 사춘기 시절, 아들은 아버지에게 “무엇에 대해 감사하나요?”하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이 세상에 감사하지 않을 건 아무것도 없단다. 모든 것에 감사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감사의 대상이라는 걸 반드시 깨닫게 될 거다.”

어머니가 과로로 인한 뇌출혈로 의식을 잃고 중환자실로 실려 갔을 때도 아버지는 아들의 손을 잡고 감사하자는 말을 했습니다. “어머니가 쓰러진 걸 감사하라고요?” 아들은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에게 소리쳤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손을 잡고 계속 감사하자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그렇게 며칠 동안 아버지는 의식불명 상태의 어머니를 위해 무엇엔가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기적적으로 어머니는 소생했습니다. 그날 이후 아들은 아버지의 감사를 감사하게 생각하고 세상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살면서 아들은 많은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감사는 긍정의 토양에서 자라는 줄기식물 같고, 감사는 하면 할수록 줄기가 쉬지 않고 뻗어 나가는 무궁무진한 생명력을 지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곳에 있는 현재 상태의 나에게 감사하고, 그것을 이루는 모든 배경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사방이 환해진다는 점도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가 곧 마음의 열림과 닫힘을 결정하는 열쇠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하면 열리고 비관하면 닫히는 마음. 이 세상에는 오직 감사할 일밖에 없다던 아버지의 가르침을 아들은 비로소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당신의 야간 경비로 주민이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있음을 감사합니다. 어머니는 깊은 밤 허기에 시달리는 사람을 위해 음식을 만들 수 있음을 감사합니다. 아들은 깊은 밤 생필품이 필요한 사람에게 봉사할 수 있음을 감사합니다. 그들의 감사가 우리의 오늘을 밝히고 그들의 감사가 또 다른 감사의 밑거름이 됩니다. 감사하는 말, 감사하는 마음, 감사하는 사람이 어우러져 세상이 환하게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동아일보 2009년 9월 12일>





3. 꼭 지켜야 할 것.. (사실은 가족들에게 날 대할 때 이렇게 꼭 지켜달라고 하고 싶은 말..ㅜㅜ)


칭찬은 말로 비판은 글로

칭찬은 공개적으로, 비판은 개인적으로 해야 한다. 칭찬은 말로, 비판은 글로 해야 한다. 칭찬은 감성적으로, 비판은 이성적으로 하는 게 좋다. 칭찬은 개론으로, 비판은 각론으로 해야 한다. 칭찬은 어떻게 해도 상관없지만 비판은 자칫 상대의 감정이나 자존심을 다치게 할 수 있다.
 
칭찬을 많이 한다고 손해 보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서 이익을 볼 기회가 더 많다. 반면 남에게 하는 비판은 잘해야 본전인 경우가 많다. 아무리 좋은 얘기라도 상대가 원치 않으면 비판이 비난으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들 앞에서 비판당하면 기분 좋을 사람이 없다. 아무리 좋은 비판이라도 상대의 기분과 감정, 자존심이 고려되지 않는 비판이라면 결코 좋은 비판이 되지 않는다.
 
물론 칭찬과 아부를 구분하지 못해서는 안 된다. '볼 때마다 탄복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역시 사장님의 천재성은 탁월하십니다' 등은 칭찬이라기보다 아부에 가깝다. 아부는 한 명의 아군을 만들기 위해서 여러 명의 적군을 만드는 격이 된다. 그리고 아부가 지나치면 한 명의 아군에게서도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다.
 
대기업의 L 과장은 일 잘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이다. 하지만 그는 아랫사람에게 혹독할 정도로 비판적이다. 그것도 사람들이 모두 있는 사무실에서 직설화법으로 비판하고 지적하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L 과장을 따르는 아랫사람은 별로 없다. 특히 조직생활에서는 상대를 배려하면서 얘기하는 게 매너이자 세련된 언어이다. 이걸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보다 가치를 낮게 평가받을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결국 L 과장은 번번이 승진에서 누락되다가 후배 기수가 자기 부서의 부장으로 발령을 받자 사표를 쓰고 나오고 말았다.
 
아랫사람에게 비판할 때는 칭찬과 비판, 격려를 순차적으로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먼저 칭찬을 해서 상대의 마음을 여유 있게 만들어두고, 비판이나 지적할 얘기를 그 다음에 건넨다. 그리고 마무리를 격려의 메시지로 끝내는 거다. 이렇게 하면 비판이 좀더 진심 어린 메시지로 다가오기 쉽고, 상대의 자존심이나 감정을 상하게 하지도 않는다.
 
정말 충고하고 싶다면, 정말 비판하고 싶다면 한 번으로 끝내라. 두 번하면 잔소리로 들릴 것이고, 세 번 하면 상대의 히스테리로 여겨질 것이다. 충고를 두세 번 계속 하게 되는 것은 말하는 사람의 욕심이자 상대에 대한 장악 욕구이다. 상대와 동등하다고 생각하면 같은 충고를 반복하지 않는다. 상대가 나보다 약자이거나 낮아 보일 때 같은 충고를 집요하게 반복하는 실수를 범하기 쉽다.
 
칭찬은 감성적이어서 두루뭉실하게 해도 좋지만, 비판은 이성적이어서 구체적이고 명확해야 한다. 업무에 대한 비판이나 지적시에는 전문성을 갖추고 해야 한다. "자기도 제대로 모르면서 어디 감히 비판을 하냐"라는 반응이어선 곤란하다. 비판은 상대를 이성적으로 설득할 만큼 제대로 준비해서 해야만 한다.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것이 기껏 칭찬하고도 상대에게 감사하단 얘기 못 듣고, 진심으로 비판하고서도 상대에게 욕먹는 상황이 아니겠는가. 시끄럽게 칭찬해서 상대로부터 나의 칭찬에 감사한 마음이 들도록 하고, 조용하게 비판해서 상대가 자존심 다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사람을 부르는 성공 언어의 기본이다.

<즐거운 학교>





4. 울 엄니가 내게 해줬으면 하는 말..ㅜㅜ (실제상황 : 니 키워준거 다 토해~ 내 용돈이나 주고 그런말 해라~)


어느 어머니의 말씀

아들아!
결혼할 때 부모 모시겠다는 여자 택하지 마라.
너는 엄마랑 살고 싶겠지만
엄마는 이제 너를 벗어나
엄마가 아닌 인간으로 살고 싶단다.
엄마한테 효도하는 며느리를 원하지 마라.
네 효도는 너 잘사는 걸로 족하거늘….

네 아내가 엄마 흉을 보면
네가 속상한 거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그걸 엄마한테 옮기지 마라.
엄마도 사람인데 알면 기분 좋겠느냐.
모르는 게 약이란 걸 백 번 곱씹고
엄마한테 옮기지 마라.

내 사랑하는 아들아!
나는 널 배고 낳고 키우느라 평생을 바쳤거늘
널 위해선 당장 죽어도 서운한 게 없겠거늘…
네 아내는 그렇지 않다는 걸 조금은 이해하거라.
너도 네 장모를 위하는 맘이 네 엄마만큼은 아니지 않겠니.

혹시 어미가 가난하고 약해지거든 조금은 보태주거라.
널 위해 평생 바친 엄마이지 않느냐.
그것은 아들의 도리가 아니라 사람의 도리가 아니겠느냐.
독거노인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어미가 가난하고 약해지는데 자식인 네가 돌보지 않는다면
어미는 얼마나 서럽겠느냐.
널 위해 희생했다 생각지는 않지만
내가 자식을 잘못 키웠다는 자책이 들지 않겠니?

아들아!
명절이나 어미 애비 생일은 좀 챙겨주면 안 되겠니?
네 생일 여태까지 한 번도 잊은 적 없이
그날 되면 배 아파 낳은 그대로
그때 그 느낌 그대로 꿈엔들 잊은 적 없는데
네 아내에게 떠밀지 말고 네가 챙겨주면 안 되겠니?
받고 싶은 욕심이 아니라
잊혀지고 싶지 않은 어미의 욕심이란다.

아들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이름만 불러도 눈물 아릿한 아들아!
네 아내가 이 어미에게 효도하길 바란다면
네가 먼저 네 장모에게 잘하려므나.
네가 고른 아내라면
너의 고마움을 알고 내게도 잘하지 않겠니?
난 내 아들의 안목을 믿는다.

딸랑이 흔들면 까르르 웃던 내 아들아!
가슴에 속속들이 스며드는 내 아들아!
그런데 네 여동생 그 애도 언젠가 시집을 가겠지.
그러면 네 아내와 같은 위치가 되지 않겠니?
항상 네 아내를 네 여동생과 비교해 보거라.
네 여동생이 힘들면 네 아내도 힘든 거란다.

내 아들아 내 피눈물 같은 내 아들아!
내 행복이 네 행복이 아니라 네 행복이 내 행복이거늘
혹여 나 때문에 너희 가정에 해가 되거든 나를 잊어다오.
그건 어미의 모정이란다.
너를 위해 목숨도 아깝지 않은 어미인데
너의 행복을 위해 무엇인들 아깝겠느냐.
물론 서운하겠지 힘들겠지 그러나 죽음보다 힘들랴.

그러나 아들아!
네가 가정을 이룬 후 어미 애비를 이용하지는 말아다오.
평생 너희 행복을 위해 애써 온 부모다.
이제는 어미 애비가 좀 편안히 살아도 되지 않겠니?
너희 힘든 건 너희들이 알아서 살아다오.
늙은 어미 애비 이제 좀 쉬면서 삶을 마감하게 해다오.
너희 어미 애비도 부족하게 살면서 힘들게 산 인생이다.
그러니 너희 힘든 거 너희들이 헤쳐가다오.

다소 늙은 어미 애비가 너희 기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그건 살아오면서 따라가지 못한 삶의 시간이란 걸
너희도 좀 이해해다오.
우리도 여태 너희들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니.
너희도 우리를 조금,
조금은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면 안 되겠니?
잔소리 같지만 너희들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렴. 우린 그걸 모른단다.
모르는 게 약이란다.


아들아!
우리가 원하는 건 너희들의 행복이란다.
그러나 너희도
늙은 어미 애비의 행복을 침해하지 말아다오.
손자 길러 달라는 말 하지 마라.
너보다 더 귀하고 예쁜 손자지만
매일 보고 싶은 손자들이지만
늙어가는 나는 내 인생도 중요하더구나.
강요하거나 은근히 말하지 마라.
날 나쁜 시어미로 몰지 마라.
내가 널 온전히 길러 목숨마저 아깝지 않듯이
너도 네 자식 온전히 길러 사랑을 느끼거라.

아들아 사랑한다. 목숨보다 더 사랑한다.
그러나 목숨을 바치지 않을 정도에서는
내 인생도 중요하구나….


<동아일보 2009년 10월 17일>



출처 : http://www.kenneagram.com/

2009년 10월 16일 금요일

The King of Love by Scott Brenner



Can it be
Love sent from heaven to save such a sinner like me
Sent to die, bearing the shame of the sins of the world
Love's pure sacrifice, Jesus

Hallelujah to the God of our salvation
I sing Hosanna to the Savior of my soul, Jesus
Let earth and heaven now exalt His holy name
He is Lord, the King of Love
The First, the Last, the Risen one

Hallelujah to the King of all creation
Praise and honor to the Risen Son of Man, Jesus
Let earth and heaven now exalt His holy name
He is Lord, the King of Love
The First, the Last, the Risen one

주 은혜 놀라운 사랑 어찌 말할 수 있으랴
나 같은 죄인 살리려 십자가에서 죽으시었네 예수

할렐루야 구원의 주 하나님께
호산나 내 영혼의 구세주 예수
온 천하 주 보좌 앞에 경배해
그는 주 사랑의 왕 나의 예수 부활의 주

할렐루야 전능의 왕 하나님께
찬양해 부활하신 인자되신 예수
하늘과 땅 주의 성호 높이네
그는 주 사랑의 왕 나의 예수 부활의 주

Glory, Praise and Honor to His Name(x4)

영광, 찬양, 존귀 예수께(x4)

사랑의 왕 나의 예수 부활의 주(x3)

Hallelujah Hallelujah Hallelujah
Hallelujah Hallelujah Hallelujah
The King of Love, The King of Love
The First, the Last, the Risen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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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7일 수요일

여성의 불행은 우주적 재앙인데... 이래서야 원...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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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31617

'애까지 딸린' 여자라서 더 불행해요

[해외리포트] 미국 연구결과를 통해 본 '여성의 행복' 09.10.07 18:48 ㅣ최종 업데이트 09.10.07 18:48


"유경, 내가 왜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심했는지 알아?

13년 전에 엄마한테 그 이유를 얘기했었어. 40대가 됐을 때, 식탁에 둘러앉은 남편과 아이들을 하나씩 가리키면서, "I hate you, I hate you, I hate you!!!"(너도, 너도, 너도 다 미워!) 이렇게 말하지 않으려고, 그래서 공부를 하겠다고. 내 커리어를 쌓겠다고 말이야.

 

그런데 웃긴 게 뭔 줄 알아? 결국 작년에 12년 만에 박사를 땄잖아. 그 때 내가 45살이었거든. 근데, 지금의 나를 봐. 정말, 인생이…"

 

나와 타라는 같이 웃었다. 너무 허탈했다.

 

[여자의 고민] 12년 만에 박사가 된 친구 "내 인생이 웃겨"

 

  
타라와 내 친구들.
ⓒ 이유경
여성

타라는 현재 우울증 치료를 다시 받고 있다. 첫 번째는 첫 아이 출산에 따른 산후우울증이 발전한 경우였고, 이번에는 대학 강사일과 육아, 집안일 등 때문에 재발한 것이다.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거식증을 동반한 우울증이다.

 

의사가 그랬단다. 한 번 우울증에 걸렸던 사람은 그 이후에도 계속 조심해야 한다고. 물론 타라는 조심했다. 그런데 사는 게 마음처럼 되지는 않았다. 2년 전에는 유방암 치료를 받아야 했고, 둘째도 출산했다.

 

한국으로 치면 시간 강사로 일하고 있는 타라는 풀타임 교수직을 얻는 게 목표다. 같은 과에서 풀타임 조교수로 있는 남편은 한 학기에 두 과목만을 가르칠 뿐이지만 4과목을 가르치는 타라보다 2배도 넘는 월급을 받는다.

 

1996년, 남편이 석사를 받고 박사과정을 밟기 시작했을 때, 타라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5년 후 남편은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타라의 공부는 끝나지 않았다. 남편에게 따뜻한 저녁을 먹여야 했고, 집안 대소사를 챙겨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편의 새 직장과 그녀의 학교는 비행기로도 7시간이나 떨어져 있었다.

 

남편의 '차례'가 끝나면 타라는 자신의 '차례'가 돌아올 것으로 믿었다. 그런데, 남편의 차례가 끝나고도 6년이 지나서야 겨우 그녀의 차례가 돌아왔다. 그마저도 학교에서 그녀의 논문심사를 더는 미뤄줄 수 없다고 경고했기 때문이었다.

 

(잠깐, 타라의 남편은 과묵하지만 젠틀한 사람이다. 절대 이상한 사람이 아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그렇다.)

 

  
GSS의 조사결과. 1972년 이래로 여성은 점점 덜 행복해졌다. 흑인 여성들은 1972년보다는 약간 더 행복해졌는데, 흑인 남성과 비교하면 덜 행복하다.
ⓒ GSS
여성

 

[연구결과] "여자들은 지난 40년간 점점 더 불행해졌다"

 

올해 5월,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와튼 스쿨에서는 '점점 더 줄어드는 여성 행복의 모순'(The Paradox of Declining Female Happiness)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왜 '모순'이라고 했을까.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여성의 삶의 여러 단면을 보여준다는 지표들, 가령 소득, 교육수준, 직업의 기회 등이 눈에 띄게 향상됐음에도 지난 40여 년 동안 여성들은 끊임없이 불행해져 왔기 때문이란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객관적으로 측정이 가능한 각각의 지표가 향상되었음에도, 여성이 느끼는 주관적 행복감은 하강 일변도였으며, 남성 역시 불행하다고 느끼는 부분보다 여성의 불행정도가 훨씬 더 깊었다.

 

여성의 불행은 나이와 국적, 인종에 상관없이, 또 자녀/결혼/이혼 경력의 유무나 직업의 종류에도 관계없이 지난 30~40년간 계속 심해졌다. 남성들은 그렇지 않았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혹시 조사 방법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와튼 스쿨의 이번 보고서는 모니터링 더 퓨처, 버지니아 슬림 등 총 6개 기관의 연구결과를 총망라한 것으로, 이는 지난 40여 년간 선진국 130만 명의 남녀를 조사한 통계 결과를 종합 분석한 것이다.

 

보고서의 조사결과에서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아직 성년이 되기 전의 어린 여학생들이 남학생들에 비해 점점 더 많이, 덜 행복하다고 대답해왔다는 점이다. 왜 여자들은 성인이 되기 전부터 남자보다 더 불행하다고 느끼는 걸까?

 

  
GSS의 조사결과(위)와 그 수치를 그래프로 나타낸 것(아래). 나이가 들어가면서 여성보다 남성의 행복도가 더 높게 나타난다.
ⓒ GSS/허핑턴포스트
여성

 

[왜 그럴까] 늘 징징대 왔기에? 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

 

<뉴욕타임스>의 모린 다우드가 왜 그럴까 하고 친구(남자)에게 물었더니 그는 "(여자들은) 언제나 징징대 왔잖아"라고 대답했다가 다시, "너희들(여성)은 감정이 있어서 그래"라고 대꾸했다고 한다.

 

초중고등학생 대상 조사를 진행한 '모니터링 더 퓨처 보고서'에서는 초중고 여학생들에게 인생에서 뭐가 중요한가를 14가지 영역으로 나눠서 물었다. 그러자 이 여학생들은 남학생과 달리 무려 13개의 영역이 만족되어야 인생이 행복할 것이라 대답했고, 각각에 대해 느끼는 중요성도 남학생의 그것에 비해 강도가 훨씬 높았다.

 

여학생들은 벌써부터 집안일은 물론 직장에서의 성공, 안정적 직업 확보, 사회에 대한 공헌, 지역사회에서 리더십 발휘 등의 다양한 영역에서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남학생보다 더) 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반면, 자신만을 위해 또는 친구들과 함께 여가를 즐기는 것을 제일 덜 중요한 것으로 취급했다.

 

모린 다우드의 말을 들어보자.

 

"여성들은 남성의 영역으로 들어서게 되면서 더 많은 요구와 스트레스를 스스로에게 부여하게 됐다. 이미 스스로를 외모, 자녀, 남편, 정원 가꾸기, 저녁 파티 등으로 재단했던 여성들은 이제 대학원 가기, 직장, 업무 마감일, 양쪽 일(집안 일+바깥일)을 다 잘하는 결혼 생활 에도 스스로 점수를 매기기 시작했다."

 

물론 다 잘하려고 들지 말고, 선택을 할 수도 있다. 페미니즘이 탄생했을 때 그 모토가 무엇이었나. 여성에겐 선택권이 있고, 자신의 운명에 대한 결정권과 자율권이 있다는 것 아니었나. 그러나 과연 어떤 식으로 선택할 것인가. 권한은 있으나 선택의 여지가 다양하지 않다. 선택한 결과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또 얼마나 매서운지. 엄마의 역할을 버리고 사회적 성공을 꿈꾸는 여성을 '온전한 여성'으로 받아들이는 사회가 얼마나 될까.(미국에서는 특히 어림도 없는 일이다.)

 

자녀와 관련해서 와튼 스쿨의 벳시 스티븐슨이 말한 다음과 같은 분석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불편한 진실] 아이 없는 여성이 아이 있는 여성보다 더 행복하다

 

"조사 전반에 걸쳐 여성의 인생에서 그녀를 덜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아이를 갖는 것이었다. 부자든 가난하든, 아이를 늦게 얻었든 일찍 얻었든 이것은 언제나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 아이가 없었더라면 또는 아이가 내 행복을 망쳐버렸다고 느낀다고 말할 사람은 거의 없다."

 

  
허핑턴 포스트에 실린 마커스 버킹햄의 글.
ⓒ 허핑턴포스트 화면캡처
여성

갤럽에서 오랜 기간 수석 연구원을 지냈고, 현재 미국에서 여성문제 전문가로 활동 중인 마커스 버킹햄도 그의 저서에서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언제 어디서든 육아문제에 대한 연구결과는 항상 같다. 아이가 없는 여성들이 일반적으로 아이가 있는 여성들보다 더 행복하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가 마치 자신의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그릇된 것으로 들릴 수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조사는 수많은 나라에서 수없이 거듭돼왔고, 그 결과는 한결같았다. 아이가 스트레스 덩어리라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그는 덧붙여서 "아이들도 이것을 아는 모양이다. 3~12학년의 아이들 1000명과 그들의 엄마에게 각각 '엄마가 내게 하는 일들 중 변했으면 하는 제일 첫 번째는?'과 '아이가 엄마에게 무엇을 바랄 것 같은가?'라는 질문을 했더니, 응답한 엄마의 56%는 아이들이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할 것이라 추측했다. 그러나 실제 그것을 희망한 아이들은 단지 10%에 불과했고, 34%의 아이들은 '엄마가 덜 스트레스 받고 덜 피곤했으면 좋겠다'고 답변했다"고 전했다. 아이들도 엄마의 기분을 잘 아는 것이다.  

 

1970년대 이래 매스 미디어에 투영된 여성의 이미지를 면밀히 조사한 <엄마 신화, 모성애의 이상화와 이것이 모든 여성에게 준 피해>(The Mommy Myth, The Idealization of Motherhood and How It Has Undermined All Women)의 저자들은 현대 여성들이 이중고를 당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즉, 과거 남성들만의 전유물로 분류됐던 영역에 여성들이 진출할 수 있게 됐지만, 전통적으로 여성의 일이라고 여겨졌던 것들로부터 여성들이 해방된 것은 아니란 것이다.

 

해방은커녕 현대 자본의 마케팅과 그와 연계된 매스미디어의 영향으로 '여성의 일'은 더욱 복잡해지고 전문화되어 아무리 잘 해도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가 돼 버렸다. (마사 스튜어트를 떠올려보자. 솔직히 그녀처럼 집안일을 할 수 있는 주부가 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저자들은 특히 1980년 이후 등장한 '포스트 페미니즘'을 통해 여성들의 '이중고'를 설명한다. 즉, "날씬한 몸매 유지와 패션 감각 보유, 남편에 대한 공경심과 자식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과 및 자기희생이 수반되는 한" 여성들은 "집밖에서는 물론 과거에 남성에게조차 제한됐던 영역에서도 일할 수 있게 됐다"것이다.

 

페미니즘의 효과로 '전폭적'으로 늘어난 여성들의 선택권. 그러나 여기에 천성적으로 출산과 성공적인 자녀 양육에 최우선을 둔다는 '모성애'가 주입됨으로써 포스트 페미니즘 시대의 여성들은 "엄마 노릇을 잘 할 수 있어야" 성공한 여성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CEO도 할 수 있고, 좋은 것 다 할 수 있지만, 아이를 위해 테마별 생일 파티를 열어줄 수 없다면, 당신은 좋은 엄마가 아니다! 실패한 엄마"가 된다는 것.  

 

  
모니터링 더 퓨처의 조사결과(위)와 이를 그래프로 나타낸 것(아래). 남학생의 행복과 비교해 봤을 때, 여학생의 생복정도는 1985년 이후로 점점 더 불행하다고 나타났다. 이미 성인이 되기 전부터 여성은 남성보다 덜 행복하다고 느끼게 됐다.
ⓒ GSS/허핑턴포스트
여성

 

[그래서 뭐?] 타라는 어떻게 해야 행복해지나

 

얼마나 많은 영역에서, 어느 정도의 만족도가 이뤄져야 여성 스스로가 행복감을 느끼는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현대 사회에서 남성보다는 여성이 채워야 할 만족감의 종류가 훨씬 더 많고 까다롭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것을 반영하는 것이 이번의 연구결과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들이 가장 많이 앓는 병은 심장질환이다. 그 다음은 우울증.(남성의 경우 우울증은 10번째) 그 결과 불안증이나 우울증 치료제를 처방받는 여성이 같은 경우의 남성 보다 두 배나 더 많다.

 

이번 여름 타라도 다시 그런 여성들 중 한 명이 되었다. 그토록 원하던 박사 학위를 드디어 따서 강의를 나가게 됐지만, 그녀가 해야 할 일들은 여전히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가 지금 미국 전역의 여러 대학으로 이력서를 돌리고 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풀타임 교수직을 찾기 위해서다. 남편과 떨어지게 된다 해도 상관없다고 했다.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지만, 결국 그런 것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타라가 풀타임 교수가 되길 기도한다. 그것이 그녀의 무거운 짐을 덜어주고, 적어도 앞으로 그녀의 선택을 덜 복잡하게 해줄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